뉴 노멀 (일상공포, 블랙코미디, 하이퍼링크시네마)
영화를 보고 나서 현관 초인종 소리가 다르게 들렸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요. 〈뉴 노멀〉은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살인 뉴스를 보면서 밥을 먹고, 모르는 사람이 점검하러 왔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문을 여는, 그 평범한 일상이 공포의 무대입니다. 정범식 감독의 장편 데뷔작 〈기담〉 이후 약 17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기도 합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일상공포, 어디서 느껴보셨나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첫 장면부터 폐가도, 병원도 아닌 아파트 복도와 편의점이 나옵니다. 제가 어제 지나쳤던 그 공간들이요.
〈뉴 노멀〉의 공포는 낯선 곳이 아니라 익숙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홀로 사는 여성을 노린 연쇄 살인 뉴스, 경복 점검이라며 찾아온 남자, 이웃집 여자를 몰래 촬영하는 옆집 남자. 어느 장면도 현실과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하이퍼링크 시네마(Hyperlink Cinema)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이퍼링크 시네마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인물과 사건들이 하나의 공간이나 우연한 접점을 통해 연결되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아모레스 페로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처음엔 각각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보고 나서 되짚으면 모든 선이 한 점으로 모인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제가 특히 불편하게 느꼈던 건 경복 점검원 에피소드였습니다. 아침에 살인 뉴스를 봤고, 낯선 남자가 문을 두드리고, 그 남자가 "혼자 사세요?"라고 물어봅니다. 현정이라는 인물이 느끼는 공포가 화면을 통해서도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은 설명 없이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됩니다.
- 아파트, 편의점, 버스 정류장 등 실제 생활 공간이 공포의 무대
- 연쇄 살인, 무단 침입, 스토킹 등 실제 범죄를 소재로 직접 차용
- 하이퍼링크 시네마 구조로 에피소드 간 연결고리를 후반부에 공개
이게 공포 영화인지 블랙코미디인지, 저도 헷갈렸습니다
〈뉴 노멀〉에서 가장 독특하게 느꼈던 건 장르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끔찍한 장면인데 묘하게 웃깁니다. 웃다가 다음 순간 오싹해집니다. 이 리듬이 계속 반복됩니다.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란 비극적이거나 금기시되는 소재를 유머로 다루는 방식입니다. 웃음이 나오는 이유가 상황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너무 어이없어서인데, 그 어이없는 일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웃고 나면 오히려 더 찜찜해집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패턴을 가장 잘 느꼈던 건 편의점 에피소드였습니다.
야간 알바생 연진은 매일 밤 진상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온라인 게시판에 살인 방법을 조언합니다. 처음엔 분풀이용 농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오는 장면에서 웃음이 딱 멈췄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적 전환은 관객이 가장 방심했을 때 가장 크게 작동합니다.
최지우 배우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진지하지만은 않은, 블랙 코미디가 섞인 공포"라고 소개한 바 있는데, 그 표현이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다만 이 톤이 모든 관객에게 통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웃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애매하다고 느끼는 장면도 분명 있었고, 저도 그중 몇 장면은 의도가 잘 읽히지 않았습니다.
하이퍼링크시네마가 완성되려면 배우가 받쳐줘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건 배우들이었습니다. 특히 최지우 배우는 제가 알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7년 만의 스크린 복귀라는 사실보다, 무심하고 서늘한 눈빛이 먼저 기억에 남습니다.
정동원은 가수로만 알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캐릭터 자체가 수줍고 조용한 인물이라 목소리 톤이 인물과 잘 맞았고, 과하게 튀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표지훈 배우는 아이돌 출신이지만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었다는 평가가 많은데, 저도 그 부분에는 동의합니다.
옴니버스 형식에서 배우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각 에피소드에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옴니버스(Omnibus) 영화란 독립적인 단편 이야기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은 형식을 말합니다. 인물의 배경을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배우의 표정과 태도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납득시켜야 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아쉬웠던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어떤 에피소드는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반전을 줬지만, 어떤 이야기는 왜 그 인물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채 사건만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배우가 아무리 잘해도 장면 수가 부족하면 설득력에 한계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 노멀〉은 개봉 후 17개 해외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았습니다. 텔레그라프의 영화 기자이자 칸 국제 영화제 병행 섹션 평론가인 팀 로비,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예술 감독 미치 데이비스 등이 공개적으로 호평한 바 있습니다(출처: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2026년 현재 넷플릭스 한국영화 탑 10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도, 시간이 지날수록 재발견되는 작품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뉴 노멀〉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나요?
A. 2026년 기준 넷플릭스 한국영화 탑 10 상위권에 올라 있을 만큼 스트리밍으로 꾸준히 소비되고 있습니다. 다만 서비스 지역과 시점에 따라 제공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해보시는 게 정확합니다.
Q. 정통 공포 영화를 기대해도 괜찮나요?
A. 귀신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는 공포 영화를 기대하셨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영화의 공포는 실제 범죄와 사회적 단절에서 오는 현실 기반 공포입니다. 블랙 코미디 톤이 섞여 있어서 무서운 영화보다는 불편한 영화에 가깝습니다.
Q. 하이퍼링크 시네마 형식이라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나요?
A. 처음에는 각각의 단편처럼 느껴지지만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은 아닙니다. 오히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구조입니다. 연결고리는 후반부에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Q. 정범식 감독의 전작을 알아야 더 재밌게 볼 수 있나요?
A. 전작인 〈기담〉을 보셨다면 감독의 스타일 변화를 비교하는 재미가 생깁니다. 〈기담〉이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고전적 공포라면, 〈뉴 노멀〉은 2022년 서울의 초연결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모르고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층위가 하나 더 생깁니다.
결론
〈뉴 노멀〉을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았던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찜찜함이었습니다. 영화 속 사건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런 사건들이 더 이상 놀랍지 않다고 느껴지는 제 자신이 이상했습니다.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을 봐도 밥을 먹고, 다음 날이면 잊어버리는 그 무뎌짐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뉴 노멀'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에피소드마다 완성도 차이가 있고, 블랙 코미디와 공포를 섞은 톤이 모든 장면에서 통하지는 않습니다. 현실 범죄를 소재로 삼은 만큼 사회적 메시지를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더 오래 남는 작품이 됐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공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기담〉이나 〈곤지암〉을 재밌게 보셨던 분이라면 한 번쯤 확인해보실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현실 범죄 문제와 관련해, 한국 경찰청은 1인 가구 대상 범죄 예방 정보를 공식 채널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출처: 경찰청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