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5

플레잉 데드 (혼신의 연기, 어머니의 녹화, 단역 배우)

죽은 척 연기하는 것이 유일한 직업인 남자가 있습니다. 대사 한 줄 없는 시체 역할만 10년 가까이 해온 히로시의 이야기, 영화 〈플레잉 데드〉를 봤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웃으면서 봤는데, 끝날 무렵에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습니다.혼신의 연기, 아무도 보지 않아도히로시는 극 중에서 엑스트라(extra), 쉽게 말해 단역 배우입니다. 배경을 채우거나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역할을 맡는 사람을 뜻하는데, 히로시의 경우 그나마도 대사가 없는 시체 역할만 맡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역할을 대하는 태도가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그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어떻게 하면 더 진짜 같은 시체가 될 수 있을까"를 연구합니다. 대본 전체를 읽고 작품의 서사..

리뷰박스 2026.10.25

프렌치 수프 (영화 감상, 트란 안 훙, 성숙한 사랑)

솔직히 처음엔 요리 영화라는 말에 큰 기대 없이 앉았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제가 중얼거린 말이 "저 혼자 보기 아깝다"였습니다. 트란 안 훙 감독의 〈프렌치 수프〉는 사건도, 갈등도 거의 없습니다. 대신 부엌에서 태어나는 소리와 빛과 냄새가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그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움직이더라고요.요리 장면이 전부인 영화, 그런데 왜 눈을 뗄 수 없었나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초반 수십 분은 거의 대사 없이 주방 시퀀스(sequence)만 이어집니다. 시퀀스란 하나의 장면 흐름으로 묶인 연속된 쇼트들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칼질, 불 조절, 접시에 음식을 담는 동작이 마치 한 편의 독립된 단편처럼 구성됩니다. 처음에는 "이게 다야?" 싶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화면에서 눈을 못 떼고 ..

리뷰박스 2026.10.24

더 우즈맨 (불편한 시선, 절제된 연기, 재범 가능성)

미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출소 후 3년 이내 약 5.3%지만, 사회적 낙인과 주거·취업 제한이 실질적 재통합을 막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2004년 영화 〈더 우즈맨〉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숫자들이 왜 그토록 공허하게 느껴지는지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가해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라는 설명을 듣고 솔직히 불편했는데, 다 보고 나서는 그 불편함이 정확히 의도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불편한 시선 — 이 영화가 선택한 카메라의 위치〈더 우즈맨〉은 12년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월터(케빈 베이컨)의 이야기를 그의 시선으로 따라갑니다. 아동 성범죄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는 극히 드문데, 이 작품이 그 선택을 하면서 생기는 긴장감이 러닝타임 내내 유지됩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접..

리뷰박스 2026.10.23

시티즌 비질란테 (법적 정의, 자경주의, 표현의 자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액션 영화겠거니 하고 틀었는데,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시티즌 비질란테〉는 법이 외면한 자리를 한 시민이 직접 채우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그 '채움'이 통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풀려난 범죄자들이 다시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두 번 상처받는 현실을 영화는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그 답답함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고, 저는 그 감정이 얼마나 위험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법적 정의가 무너질 때 — 이 영화가 건드리는 감정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이게 공감이 되지?"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은 법원에서 가벼운 처분을 받고 ..

리뷰박스 2026.10.22

프리즈너스 (선과 악, 연기 대결, 미장센)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150분짜리 수사 스릴러가 단 한 장면도 늘어진다는 느낌 없이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한 〈프리즈너스〉는 추수감사절 오후, 두 가족의 어린 딸이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사건을 쫓는 형사와 딸을 직접 찾으러 나선 아버지, 두 사람이 선택하는 길이 완전히 달랐고 그게 영화 내내 저를 불편하게 붙잡아 두었습니다.선과 악의 경계 —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주인공 켈러 도버의 선택이었습니다. 딸이 사라진 첫날부터 그는 유력 용의자 알렉스를 납치해 폐건물에 감금하고 자백을 받아내려 합니다. 처음에는 그의 분노가 이해됐습니다. 저도 부모 입장이었다면 비슷한 충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문 ..

리뷰박스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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