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박스 26

유리돔 드라마 리뷰 (북유럽 느와르, 피해자 탐정, 반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웨덴 드라마 〈유리돔〉을 처음 틀었을 때, 첫 장면부터 차가운 공기가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소녀가 밤길을 걷다 납치당하고, 20년 뒤 범죄학자가 된 그 소녀가 다시 같은 마을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북유럽 범죄물 특유의 조용한 공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한 의심이 6부작 내내 빈틈 없이 이어졌습니다.북유럽 느와르가 주는 차가운 긴장감제가 직접 봤는데, 〈유리돔〉의 배경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작동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침엽수림, 얼어붙은 호수, 탄광 재개발을 둘러싸고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린 작은 마을.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역설이 이 작품의 핵심 긴장감이었습니다.북유럽 느와르(Nordic Noir..

리뷰박스 00:30:02

맬리스 드라마 리뷰 (잭 화이트홀, 스릴러, 복수극)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코미디언 잭 화이트홀이 싸늘한 복수극의 주인공을 맡는다고 했을 때, 제가 처음 든 생각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였으니까요. 그런데 〈맬리스(Malice)〉를 끝까지 보고 나서는 그 의심을 거뒀습니다. 친절한 가정교사의 얼굴 뒤에 숨은 냉혹한 의도를 따라가다 보면, 악의가 항상 무서운 얼굴로 오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잭 화이트홀의 반전 — 친절한 얼굴이 가장 무섭다제가 직접 처음 에피소드를 틀었을 때, 애덤은 그냥 붙임성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고, 술집에서 농담을 주고받고, 상황마다 적절한 센스를 발휘하는 사람이요. 그런데 카메라가 다른 인물로 넘어가는 순간, 애덤의 표정이 딱 한 박자 늦게 꺼집니다. 그 0.5초가 드라마 전체를 꿰뚫..

리뷰박스 2026.10.27

스카페타 시즌1 (자매 연기, 법의학 수사, 시간 구성)

주말에 드라마 하나를 틀었다가 밤을 꼬박 새운 경험, 저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아마존 프라임 오리지널 〈스카페타〉 시즌 1이 딱 그랬습니다. 니콜 키드먼과 제이미 리 커티스가 자매로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됐는데, 막상 보고 나니 기대와 조금 다른 지점들이 보였습니다. 버지니아주 수석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가 28년 전 미제 연쇄 살인 사건과 현재 사건을 동시에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자매 연기 — 이 드라마의 진짜 엔진솔직히 말하면, 제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본 가장 큰 이유는 수사 전개가 아니라 니콜 키드먼과 제이미 리 커티스의 자매 씬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장면은 에너지 자체가 달랐습니다. 냉철하게 감정을 눌러담는 케이와, 거침없이 말을 뱉어버리는 도로시가 만날 때마다 일어나는 ..

리뷰박스 2026.10.27

할런 코벤의 덫 (온라인 재판, 반전 구조, 아르헨티나)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틀기 전까지 할런 코벤 시리즈를 좀 피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배경, 작은 마을, 숨겨진 비밀, 마지막 반전. 패턴이 너무 눈에 익어서요. 그런데 넷플릭스 아르헨티나 제작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걸렸고, 결국 첫 화를 눌렀다가 6부작을 한 번에 다 봐버렸습니다. 기자 엠마가 미성년자 유인 범죄를 추적하는 이야기인데,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은 건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성급하게 판단해왔나"였습니다.온라인 재판: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이미 범인이 된다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레오가 범인으로 몰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엠마가 레오의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순간, 재판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모두에게 범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

리뷰박스 2026.10.26

캐릭터 (아버지와 아들, 침묵, 계급)

부모를 닮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어느새 그 사람의 말투가 나오고, 그 사람의 눈빛이 거울에 비치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딱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199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영화 〈캐릭터(Karakter)〉는 1920년대 로테르담을 배경으로 냉혹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이기려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성공 서사처럼 보이지만, 다 보고 나면 꽤 오래 마음에 걸립니다.아버지와 아들, 누가 누구를 키운 걸까영화의 중심축은 집행관 드레버하벤과 그의 사생아 아들 야콥 빌럼 카타드뢰페 사이의 대결 구도입니다. 여기서 집행관(deurwaarder)이란 법원의 명령을 현장에서 직접 집행하는 사람, 쉽게 말해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의 재산을 압류하..

리뷰박스 2026.10.26

플레잉 데드 (혼신의 연기, 어머니의 녹화, 단역 배우)

죽은 척 연기하는 것이 유일한 직업인 남자가 있습니다. 대사 한 줄 없는 시체 역할만 10년 가까이 해온 히로시의 이야기, 영화 〈플레잉 데드〉를 봤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웃으면서 봤는데, 끝날 무렵에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습니다.혼신의 연기, 아무도 보지 않아도히로시는 극 중에서 엑스트라(extra), 쉽게 말해 단역 배우입니다. 배경을 채우거나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역할을 맡는 사람을 뜻하는데, 히로시의 경우 그나마도 대사가 없는 시체 역할만 맡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역할을 대하는 태도가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그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어떻게 하면 더 진짜 같은 시체가 될 수 있을까"를 연구합니다. 대본 전체를 읽고 작품의 서사..

리뷰박스 2026.10.25

세이레 (민간신앙, 꿈과현실, 배우연기)

금기를 깨뜨린 순간부터 집 안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영화 〈씬〉은 갓난아기를 지키기 위해 21일간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세이레 풍습을 공포의 도화선으로 삼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귀신 영화가 아니라 죄책감 영화구나"였습니다. 그 묘한 불편함이 오래 남았습니다.민간신앙: 오래된 금기가 만드는 한국적 공포영화 〈씬〉이 공포의 뼈대로 삼은 건 세이레입니다. 여기서 세이레란 아기가 태어난 후 21일이 되는 날까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집 대문에 금줄을 쳐 부정을 막는 한국의 전통 민간신앙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신생아와 산모를 외부의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상들의 약속이었던 셈입니다.주인공 우진은 전 여자친구 세영의 부고를 받고 아내 몰래 장례식장을..

리뷰박스 2026.10.25

침범 (두 편의 영화, 네 배우, 심리 스릴러)

영화관에서 나오는 길에 말이 없어지는 영화가 있습니다. 〈침범〉이 그랬습니다. 7살 아이가 가족을 위협하는 전반부부터, 죽은 사람의 신분을 훔쳐 살아가는 가짜 박혜영의 후반부까지 — 보는 내내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멍했고, 그 무게가 꽤 오래 남았습니다.두 편의 영화처럼 나뉜 구성, 그 안에서 길을 잃다친한 친구가 "스릴러 좋아하면 이거 봐"라고 해서 별 정보 없이 들어갔습니다. 처음 20분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선천적 사이코패스(Psychopathy) — 공감 능력이 선천적으로 결핍된 상태, 죄책감 없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성향을 말합니다 — 인 7살 소연을 키우는 엄마 영은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 분위기가 공포 영화라기보다 처절한 가족 드라마..

리뷰박스 2026.10.24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추리, 타이밍, 성장)

열 살 딸이 던진 "아빠, 나 어떻게 태어났어?"라는 질문 하나가 한 남자의 연애사 전체를 뒤흔든다. 영화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처음 틀었을 때, 저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예상과 꽤 달랐습니다. 추리의 재미, 어긋나는 타이밍, 그리고 아빠와 딸 사이의 온기가 한 편 안에 다 들어있는 영화였습니다.'엄마는 누구일까' — 관객을 끌어당기는 추리의 재미이 영화가 다른 로맨스 영화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내러티브 구조에 있습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 작품은 액자식 구성을 택합니다. 쉽게 말해 아빠 윌이 딸 마야에게 과거 연애담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관객은 자연스럽게 마야와 같은 자리에 앉게 됩니다.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

리뷰박스 2026.10.24

더 랍스터 (세계관, 풍자, 엔딩해석)

사랑을 못 찾으면 동물이 되는 세상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갈 무렵, 어느 순간부터 '이게 우리 이야기 아닌가' 싶어서 웃음이 뚝 멈췄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2015년작 〈더 랍스터〉는 커플 강제 시스템이라는 극단적 설정 위에 사랑과 사회 규범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얹은 작품입니다. 블랙 코미디(Black Comedy) 장르 특유의 냉소적 유머와 철저히 절제된 미장센이 결합한 결과, 보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묘한 영화입니다.극단적 세계관이 폭로하는 것〈더 랍스터〉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솔로가 되면 호텔에 수용되고,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 숲에 방사됩니다. 주인공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랍스터가 되고 싶다고 말합..

리뷰박스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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